팔방미인 베이브 디드릭슨 자하리아스

팔방미인 베이브 디드릭슨 자하리아스

팔방미인 베이브 디드릭슨 자하리아스

Blog Article

육상, 테니스, 골프, 축구를 모두 휩쓴 위대한 스포츠우먼


다른 여자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놀 때 자하리아스는 역기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힘에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뭔가 다른 점이 있었다. 자하리아스에게는 어느 한 분야가 아닌 축구에서 골프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최선을 다하는 기질이 있었다. 훗날 여성 스포츠계에 위대한 금자탑을 남기게 될 베이브 디드릭슨 자하리아스 Babe Didrikson Zaharias(1911~1956)는 골프 스윙을 하더라도 손이아플 때까지가 아니라 손에서 피가 날 때까지 해내는 근성의 소유자였다. 테니스 연습에도 열심이어서 양말에 구멍이 나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고 테니스화도 하루 두 켤레씩 갈아 신었다.

AP통신은 자하리아스를 그해의 여성 체육인으로 여섯 번이나 선정했고 메이저 골프대회 우승 기록만도 열 번이나 되었다. 1932년 올림픽에 출전한 자하리아스는 금메달 두 개와 은메달 한 개를 따기도 했다. 당시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하려 했지만 여성이 출전 가능한 경기를 세 개로 제한하는 규칙 때문에 더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런 자하리아스의 재능은 사실 천부적인 것이었다. 어머니 한나는 모국 노르웨이에서 이미 이름을 날린 스키선수이자 아이스 스케이팅 선수였다. 하지만 부모는 그녀에게 그저 재능을 물려주었을 뿐, 그 재능을 발전시킬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지는 못했다. 1911년 텍사스주 버몬트에서 출생한 자하리아스는 집 뒤의 쓰레기장에서 도움이 되는 운동기구를 찾아내곤 했다.

 

즉석에서 만든 창의적인 운동법


자하리아스가 운동에 이용했던 역기는 아버지가 빗자루에 다리미를 달아 만들어 준 것이었다. 너무나 가난했던 자하리아스의 부모는 주말에 용돈으로 5센트를 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뒷바라지를 해줄 수 없었다. 결국 자하리아스 스스로 기구를 만들어 가며 운동을 계속했다. 그녀는 이웃집 울타리를 장애물 경기에 사용하는 허들 삼아 뛰어넘곤하다가, 관목숲이 너무 자라나면 이웃집 사람에게 가지치기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해 주기도 했다.

이렇게 자하리아스는 가난까지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했다. 다른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단순히 가난한 집 아이가 아니라 뭔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고, 이런 습관이 운동선수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경기에 임할 때도 항상 자신의 능력을 굳게 믿고 자신감을 표시해서 다른 선수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열여덟 살 때 처음 미국 육상대표로 뽑혀 올림픽에 대비하는 훈련에 들어갔을 때도 연습장에서 "올림픽에서 나는 어느 분야건 참가만 하면 메달을 딸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던 일화는 유명하다.

실제로 연습경기에서 자하리아스는 3시간 동안 여섯 분야에서 1등을 차지했고 여덟 경기에 출전해 세계신기록 네 개를 기록했다.

이런 꾸준한 자기와의 싸움은 그녀에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자하리아스의 전기 『베이브 디드릭슨 자하리아스의 삶과 전설 Babe: The Life and Legend of Babe Didrickson Zaharias』의 저자 수전 케일리프Susan Cayleff는 "자하리아스는 자신이 뭐든 할 수 있다고 강하게 믿었다"고 쓰고 있다.

자하리아스의 성공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강도 높은 훈련에 흠뻑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케일리프는 “자하리아스는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며 스스로를 신체적 한계로 내몰았다. 그 뒤 도전한 모든 스포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밝혔다.

자하리아스의 코치였던 멜빈 매컴Melvin McComb은 "자하리아스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너무 혹사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도 하루 연습시간만 10시간 이상에 1,500개의 공을 쳐대, 지독한 연습벌레로 소문이 났다. 여동생 릴리는 이제 연습을 그만하라고 애원했지만 자하리아스는 "조금만 더 하고 가겠다"며 여동생의 간청도 못 들은 척했다. 주말에는 16시간이나 연습하기도 했다.

 

강한 결단력


테니스를 할 때도 이런 버릇은 계속돼 하루에 시합을 17세트나 소화한 적도 있었다. 테니스를 시작한 지 몇 달도 안 되어 개인지도를 해주던 코치를 간단히 이기기까지 했다. 케일리프는 “자하리아스가 한번 마음을 먹으면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것도 그녀를 멈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런 열정은 1952년 결장암 진단을 받을 때까지 계속된다. 처음에는 절망했지만 곧 자하리아스는 병마와 정면승부를 펼친다. 자하리아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은 끊임없는 경쟁과 승자가 되기 위한 투쟁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분야에서 경험을 쌓기 위해 나는 노력했다. 이제 골프로 돌아와 다시 전과 같은 성적을 거두겠다.”

수술 뒤 경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자하리아스는 포기하지 않고 다리와 팔의 근육강화훈련을 받는 모습까지 공개했다. 당시 언론은 재활훈련 중 자하리아스가 자주 골프 스윙까지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수술 4개월 뒤 골프 토너먼트에 출전한 자하리아스는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자하리아스는 자신이 하는 일에 너무 열중해 아무것에도 구속되지 않았다. 게임 규칙도 예외는 아니었다. 케일리프는 “게임에 임할 때 보면 규칙 따위는 거의 일부러 무시하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코앞에 있는 과제, 예를 들면 새로운 기술을 연마한다든지 할 때에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런 모습은 마치 눈을 가리고 질주하는 경주마 같았다. 간혹 그 때문에 낭패를 보기도 했다.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 출장이 금지된 것이다. 아마추어만을 위한 대회에 프로인 자하리아스가 대회규정 같은 것은 살펴보지도 않고 참가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허세를 부린다는 면에서 봐도 자하리아스는 그야말로 전사였다.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평가전 전날 밤, 자하리아스는 복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평가전이 염려될 정도였다. 그러나 케일리프의 책에 의하면,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이런 고통은 내가 정말 준비가 됐다는 신호"라는 말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Report this page